EP03 ·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퇴직연금, 고르는 것도 관리하는 것도 어렵다면? 나에게 맞는 TDF 찾기
등록: 2026.11.05





이런 고민은 조범수 씨 부부만의 일이 아닐 겁니다. 한 사람은 "너무 위험한 건 싫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다고 예금에만 두기는 아깝잖아"라고 하죠.
둘 다 틀린 말은 아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원금을 지키고 싶든 더 벌고 싶든, 퇴직연금 앱을 열었을 때 막막한 마음은 똑같습니다.
이름이 비슷비슷한 상품이 많을 땐 오히려 고르기를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결정을 미루는 사이, 퇴직연금 계좌에 다음 운용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자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상품을 하나하나 공부하기 전에, 나에게 맞는 선택 기준부터 세워 보는 겁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죠. 퇴직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지, 직접 관리할 시간은 얼마나 있는지부터 알고 여기에 퇴직연금 상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까지 이해하면, 남들이 좋다는 상품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운용 방법을 고를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 DC형 가입자이거나 개인형 IRP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퇴직연금을 굴리는 길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① 예금처럼 원금과 약속한 이자를 받는 원리금보장상품에 두거나, ② 내가 직접 펀드나 ETF 등의 실적배당상품을 골라 담고 때마다 바꿔 주거나, 아니면 ③ 전문가가 주식과 채권 비중을 알아서 조절해 주는 상품에 맡기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만 해도 되고 세 가지 방법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하죠.

어떤 방식이 나에게 맞는 방법인지를 알려면 두 가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예금 금리 정도의 수익에 만족하며 원금보장을 원한다면 원리금보장상품을 위주로 운용하고, 직접 관리하면서 그 이상의 수익을 원한다면, 시장을 공부하고 주기적으로 상품을 바꿔 줄 시간과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거죠.
가능하겠다고 생각이 들면 직접 상품을 골라 운용하면 되고, 자신이 없다면 알아서 굴려 주는 상품에 맡기면 됩니다.

알아서 굴려 주는 상품에 맡기기로 했다고 고민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상품에도 안정적으로 굴리는 것도, 적극적으로 굴리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한번 확인이 필요합니다. 목표수익률이 얼마인지와 어느 정도의 원금손실 위험을 견딜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거죠.
문제는 그걸 따져 보고 고르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겁니다. 바쁘다 보면 "다음에 찬찬히 보지" 하고 미루게 될 수 있죠.
그사이 만기가 끝난 돈이나 새로 들어온 부담금은 갈 곳 없이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기 알림을 받았던 그 돈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범수 씨처럼 퇴직연금 DC형 가입자라면 회사가 1년에 한 번 이상 부담금을 넣어 주니, 내 돈은 어딘가에 담겨 있을 겁니다.
만기를 정해 예금에 넣어 뒀을 수도 있고 만기 없는 펀드에 있다면 계속 굴러가고 있겠죠. 하지만 상품이 만기가 되었는데, 관리를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면?
그 돈은 "갈 곳 없는 돈"이 됩니다. 계좌 속 이런 돈을 대기성 자금이라고 하는데, 대기성 자금은 예금보다도 낮은 이자율이 적용되어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게 되죠.
그래서 운용되지 않고 대기하고 있는 자금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입니다. 내가 미처 지시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그럴 땐 이 상품으로 굴려 주세요" 하고 미리 골라 설정할 수 있게 한 거죠.
계좌에 있던 상품의 만기가 지나고 4주 동안 운용 지시가 없으면, 퇴직연금사업자는 "2주 뒤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됩니다"라는 안내를 해 줍니다.
그 2주 안에도 지시하지 않는다면? 그때 미리 골라 둔 상품으로 돈을 옮겨 운용해 주는 게 디폴트옵션입니다. DC형이나 IRP에 처음 가입했을 때는 첫 부담금이 들어오자마자 같은 안내가 오고요.
안내가 오면 그때 정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조범수 씨처럼 바쁜 날 문자 하나 넘기는 건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디폴트옵션을 한 번 정해 두면, 앞으로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부담금이 들어올 때마다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됩니다. 디폴트옵션을 미리 정해 두라는 건 이 때문입니다.

2023년 7월부터는 새로 가입할 때 반드시 정하도록 바뀌었지만, 아직 안 정했다고 불이익이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정해 두면 됩니다.


디폴트옵션을 통해 상품을 고를 때는 앞에서 따져 본 내 성향에 맞춰 고르면 됩니다. 상품은 안정형, 안정투자형, 중립투자형, 적극투자형 중에 고를 수 있습니다.
원금보장이 우선인 조범수 씨라면 안정형이나 안정투자형을, 적극적으로 연금을 운용해 보고 싶은 조범수 씨 아내라면 중립투자형 이상을 살펴보면 됩니다.
실제로 2025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 53.3조 원의 85.4%가 안정형에 있습니다(2025년 말, 고용노동부·금융감독원).
나의 투자성향이 원금보장을 우선으로 하는 안정형 투자자라서 안정형 상품을 골랐다면 괜찮지만, 상품 목록 맨 위에 보이는 상품을 눌러 두고 잊은 거라면 내가 고른 디폴트옵션이 어떻게 지정이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따라 사기 전에, 조범수 씨가 퇴직연금을 직접 굴리면 어떻게 될지 한 번 생각해 보죠. 퇴직연금은 노후를 위한 자금이기 때문에 개별 종목 주식에 직접 투자는 할 수 없고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금융상품은 적립금의 70%까지만 담을 수 있습니다.
조범수 씨가 60세에 은퇴를 한다면 16년이 넘게 남았으니, 처음에는 위험자산 비중이 좀 높아도 괜찮습니다. 중간에 시장이 크게 떨어져도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은퇴가 코앞인데 위험자산 비중이 높다면, 시장의 변동성이 심할 때마다 노후 자금이 줄어들까 잠 못 드는 날들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조금씩 줄여 안전 자산으로 옮기는 비중 조절이 필요합니다. 원금손실의 위험성을 계속 줄여 나가는 것이죠.

할 일은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꼭 은퇴 시점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동안 처음 정한 비중과는 다르게 상품이 운용된다면, 많이 오른 상품의 비중은 줄이고 덜 오른 자산의 비중은 채워 나가면서 나의 운용전략에 맞게 상품을 다시 정비해야 합니다. 이걸 혼자 할 수 있을까요?
TDF는 바로 이 일을 대신해 주는 펀드입니다. Target Date Fund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목표 시점이 정해진 펀드"라는 뜻이죠. 여기서 목표 시점이 바로 내 은퇴 시점입니다. 이름 끝의 2040, 2045 같은 숫자가 바로 그것이고요.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처럼 오래 모아 노후에 꺼내 쓰는 돈을 굴리도록 설계된 상품입니다. 그래서 TDF는 짧은 수익보다 긴 시간을 보고 움직입니다.
우선 국내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주식과 채권에 나눠 담아, 한 시장이 부진해도 다른 자산이 받쳐 주도록 하죠. 수십 년을 굴리는 돈이 물가 상승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렇게 다양한 지역에 넓게 나눠 담는 게 기본입니다.
그리고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은 줄이고 채권은 늘리며, 시장이 움직여 틀어진 비중도 알아서 다시 맞춰 줍니다.

이런 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경로가 비행기가 착륙하듯 고도를 서서히 낮춘다고 해서 "글라이드 패스"라고 부르죠. 다만 TDF도 투자 상품이라, 시장이 크게 흔들리면 원금 손실이 날 수 있습니다.



보통 내 퇴직연금 계좌가 있는 퇴직연금사업자의 상품을 먼저 확인하게 되겠지만, 사업자마다 다양한 구성의 TDF 상품이 있을 수 있으니, 나의 목표 은퇴 시기, 나의 투자 성향을 확인하고 상품을 선택하면 됩니다.

TDF 이름 맨 뒤의 네 자리 숫자를 빈티지라고 합니다. 내 빈티지는 출생 연도에 예상 은퇴 나이를 더해 구합니다. 1982년생인 조범수 씨가 60세에 은퇴할 계획이라면 2042년이니, 가장 가까운 TDF 2040이 출발점입니다. TDF는 보통 5년 단위로 나오니, 계산한 숫자와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면 됩니다.


다음은 성향입니다. 같은 해에 은퇴해도 손실을 견디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죠. 이때 빈티지를 변경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40년에 은퇴할 계획이지만 2035나 2030을 고르면, 나보다 5~10년 먼저 은퇴하는 사람에 맞춘 TDF를 사는 셈입니다. 이런 TDF는 이미 주식을 상당히 덜어 낸 상태라 지금 기준으로도 채권 같은 안전자산이 더 많고, 내가 은퇴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안전한 쪽으로 옮겨 갑니다. 덜 흔들리는 대신 기대할 수 있는 수익도 그만큼 낮아지죠.
반대로 2045나 2050을 고르면 주식 비중이 더 높고, 그 비중을 더 오래 유지합니다. 더 큰 수익을 노리는 만큼 오르내림도 커집니다. 그러니 빈티지를 바꿔서 TDF를 선택한다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원금손실 위험 수준을 조정하는 선택이 되는 거죠.
실제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는 상품설명서의 위험자산 비중 도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2040이라도 운용사마다 주식 비중과 나라별 투자 비중이 꽤 다를 수 있습니다.
2026년 4월부터는 상품설명서에 5년 단위로 위험자산 비중이 어떻게 줄어드는지를 도표로 보여 주도록 바뀌었으니, 숫자만 보지 말고 상품설명 안에서 위험자산의 비중을 확인해 보세요.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것은 비용입니다. 수십 년 굴리는 돈이라 작은 차이도 오래 쌓이면 실제 수익률을 크게 가릅니다. 과거 수익률은 참고만 하세요. 과거 수익률이 좋았다고 해서 미래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 다 됩니다. 먼저 조범수 씨처럼 하나에 다 넣는 경우부터 보겠습니다.

퇴직연금은 노후를 위한 돈입니다. 그래서 예금 같은 안전자산에는 적립금을 전부 넣을 수 있지만, 주식처럼 위험한 자산은 적립금의 70%까지만 담도록 제한합니다.
TDF는 어떨까요? TDF는 시기에 따라 주식 비중이 달라지죠. 은퇴가 멀 때는 주식을 많이 담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줄어듭니다. 이런 이유로 어느 시기에는 주식 비중이 꽤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TDF도 위험자산으로 보고, 다른 주식형 펀드처럼 적립금의 70%까지만 넣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TDF는 결국 은퇴에 맞춰 스스로 주식을 줄여 가는 상품이라 일정한 조건을 지키는 TDF는 위험자산으로 보지 않고, 적립금 전부를 넣을 수 있게 예외를 두었습니다. 이런 TDF를 적격 TDF라고 부릅니다.
2026년 4월부터 적격 TDF의 조건이 바뀌었습니다. 적격 TDF는 채권이나 현금 같은 안전자산을 은퇴 전에는 20% 이상, 은퇴 시점 이후에는 60% 이상 담아야 합니다.
주식 비중이 높은 시기에도 일정 부분은 안전자산으로 지키도록 한 거죠. 또 한 나라의 주식이나 채권에 80% 넘게 몰아 담을 수도 없게 해서 안전성을 확보합니다.

고르기는 오히려 쉬워졌습니다. 적격 TDF는 상품 이름에 "적격"을 붙이도록 바뀌었거든요. 이름에서 "적격"만 확인하면 됩니다.
2025년 말 기준으로 TDF의 98%가 적격 TDF였으니, 고를 수 있는 상품은 충분합니다.


퇴직연금 계좌의 적립금을 TDF로만 운용할 수도 있지만 다른 상품과 섞어서 운용도 가능합니다. 섞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큰 몫은 TDF에, 작은 몫만 주식형 ETF에 넣는 방법입니다. 적립금의 70~80%는 은퇴 목표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아 주식 비중이 낮은 TDF로 든든하게 깔아 두고, 나머지 20~30%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굴려 보는 거죠.
이 경우 위험자산에서 손실이 나도 TDF가 버텨 주니 계좌 전체가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반대 방법도 가능하죠. 주식형 ETF를 한도인 70%까지 채우고, 남은 30%마저 주식 비중이 높은 적격 TDF로 채우는 방법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계좌 거의 전부를 주식으로 굴리는 셈이라, 오를 때는 크게 벌지만 떨어질 때는 그만큼 크게 잃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꼭 기억할 게 있습니다. TDF 안에도 이미 주식이 들어 있다는 점이죠. 주식 비중 40%인 TDF에 75%, 주식 100%인 ETF에 25%를 담으면 계좌 전체의 주식 비중은 55%가 됩니다. 상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합친 비중이 내 성향에 맞는지 봐야 합니다.

섞어 담을 때는 무엇을 섞느냐도 중요합니다. 특정 테마 ETF를 수시로 사고파는 경우도 많은데, 퇴직연금은 20~30년을 굴리는 돈이라 자주 갈아타면 오를 때 사고 떨어질 때 파는 실수를 하기 쉬우니 퇴직연금 계좌의 상품을 너무 자주 사고팔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회사가 정기적으로 넣어 주는 부담금의 경우 회사의 규약에 정해진대로 연 1회 이상 입금이 됩니다. 분기별 입금이 되는 곳도 있겠죠?
이렇게 새로 들어온 돈으로 TDF를 사는 건 별도로 정해 줘야 합니다. 퇴직연금 앱에서 "입금 시 매수상품"을 TDF로 지정해 두면, 부담금이 들어올 때마다 알아서 지정해 둔 TDF를 살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을 쓰면 돈의 성격에 따라 나눠 담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모인 목돈은 정기예금 같은 원리금보장상품에 두고, 새로 들어오는 부담금만 TDF로 사도록 지정해 두는 식이죠. 목돈은 지키고 새로 들어오는 돈은 키우는 셈입니다.


하나에 다 넣었든 나눠 담았든, 골랐다고 끝은 아닙니다. 은퇴 시기가 바뀌었거나, 소득이 크게 달라졌거나, 다른 상품의 만기가 돌아왔다면 처음 선택이 지금도 맞는지 다시 확인해 보세요.
그런 일이 없어도 1년에 한 번, 생일이나 연말처럼 날짜를 정해 계좌를 열어 보면 충분합니다.
퇴직연금을 잘 굴리는 첫걸음은 좋은 상품을 찾는 게 아니라 나를 아는 것입니다. 손실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이 돈을 얼마나 챙길 수 있는지에 따라 같은 상품도 누군가에게는 딱 맞고,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선택이 됩니다.
그리고 가장 피해야 할 건 손실보다 방치입니다. 바쁘다고 그냥 두면 돈은 그 자리에 멈춰 버리거든요. 놓칠 때를 대비해 디폴트옵션만큼은 꼭 정해 두세요.
투자에 자신이 없다면 굳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내 성향에 맞는 상품을 신중하게 골라 두고, 가끔 그 선택이 지금도 맞는지 들여다보면 됩니다. 나를 알고, 방치하지 않고, 골라 두고, 들여다보는 것. 그게 퇴직연금 운용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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